티스토리 뷰
목차

아플 때 죽은 흰죽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있으신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환절기에 몸이 으슬으슬해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얼큰하게 속을 데워줄 낙지김치죽 한 그릇이 낫지 않을까. 실제로 만들어 먹어봤더니, 예상보다 훨씬 든든하고 회복에 도움이 됐습니다.
재료 손질, 이 순서가 맛을 가른다
환절기가 되면 기온 차가 워낙 심해서 겉옷 하나 챙기는 것도 번거롭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아침 목이 따끔하고 몸이 무거워집니다. 제가 이번에도 딱 그 상태였는데, 약을 먹으려니 빈속이라 부담되고 그렇다고 밥 한 공기를 다 비울 기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꺼낸 것이 냉장고 안에 있던 잘 익은 신김치와 냉동 낙지였습니다.
재료 손질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낙지의 전처리였습니다. 낙지는 점액질(뮤신, Mucin)이 표면에 가득 붙어 있는데, 여기서 뮤신이란 낙지 특유의 끈적한 분비물로 비린내의 주원인이 됩니다. 이걸 제거하지 않으면 죽 전체에 비린 맛이 배어들 수 있습니다. 밀가루를 넉넉히 뿌려 바득바득 문지른 뒤 흐르는 물에 헹궈내면 표면이 훨씬 깔끔해집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이 단계를 건너뛸 때와 비교하면 완성된 죽의 냄새 차이가 확연히 납니다.
신김치는 세로로 몇 번 갈라서 잘게 썰어줍니다. 너무 크면 죽 안에서 이질감이 생기고, 너무 작으면 식감이 사라지니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가 적당합니다. 손질된 낙지는 끓는 물에 1분 내외로 데친 뒤 건져서 잘게 썹니다. 낙지를 처음부터 죽에 넣고 오래 끓이면 근섬유(筋纖維)가 수축하면서 질겨지는데, 여기서 근섬유 수축이란 단백질이 열에 의해 과도하게 응고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데친 낙지를 고명으로 마지막에 올리는 방식이 훨씬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살려줍니다.
- 낙지는 밀가루로 문질러 점액질(뮤신) 제거 후 물로 헹굼
- 신김치는 세로로 갈라 한 입 크기로 잘게 썰기
- 낙지는 끓는 물에 1분 데친 뒤 잘게 썰어 고명으로 사용
죽 끓이기, 파기름에서 시작해 감칠맛까지
죽을 끓이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파기름을 내는 것입니다. 깊은 팬에 참기름 세 스푼을 두르고 잘게 썬 대파를 먼저 볶아주면 파의 황화알릴(Allyl Sulfide) 성분이 기름에 녹아 나옵니다. 황화알릴이란 파 특유의 향 성분으로, 기름과 만나면 훨씬 진하고 구수한 풍미를 만들어내는 물질입니다. 이 파기름을 베이스로 삼으면 이후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훨씬 깊은 맛을 냅니다.
파기름이 충분히 올라오면 썰어둔 신김치를 넣고 볶아줍니다. 여기에 고춧가루 1스푼, 진간장 1스푼, 액젓 2스푼, 다진 마늘 1스푼, 설탕 반 스푼을 넣고 김치가 충분히 익을 때까지 볶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 경험상 이 볶는 단계를 짧게 넘기면 나중에 죽에서 날김치 냄새가 남습니다. 최소 5분 이상 충분히 볶아야 김치의 신맛이 순해지고 감칠맛이 올라옵니다.
물 1리터를 붓고 밥 한 공기 반을 넣은 뒤 본격적으로 끓이기 시작합니다. 육수를 따로 내는 대신 표고버섯 가루 한 스푼을 넣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컸습니다. 표고버섯에는 구아닐산(Guanylic Acid)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구아닐산이란 감칠맛을 내는 핵산계 조미 성분으로, 국물 요리에 넣으면 별도 육수 없이도 깊은 풍미를 만들어줍니다(출처: 농촌진흥청). 죽은 중불에서 20분 이상 지속적으로 저어가며 끓이고, 중간에 농도를 보면서 물을 조금씩 추가해 원하는 농도로 맞춥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는데, 저어주는 작업이 꽤 팔이 아프지만 이걸 게을리하면 바닥에 눌어붙어 전체 맛이 망가집니다.
기력회복, 죽 한 그릇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이유
잘 끓인 죽을 그릇에 담고 데쳐둔 낙지와 김가루를 고명으로 올리면 완성입니다. 먹어보면 얼큰하면서도 깔끔하고, 낙지의 쫄깃한 식감이 씹는 맛을 살려줍니다. 학창시절 아플 때 부모님이 끓여주시던 죽 한 그릇 기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죽 한 그릇이 단순한 한 끼 이상의 느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낙지는 타우린(Taurine) 함량이 높은 식재료입니다. 타우린이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피로 회복과 간 기능 보호에 도움을 주는 성분입니다. 몸이 쳐지거나 기운이 없을 때 낙지를 먹으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이 성분 덕분입니다(출처: 식품안전나라). 제가 직접 먹어본 결과,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면 속이 든든해지면서 몸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죽이라면 흰죽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 고정관념이 이번에 완전히 깨졌습니다. 속이 더부룩하거나 식욕이 없을 때도 이 죽은 부담 없이 넘어갑니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빈속에 먹기 겁날 때, 이 죽 한 그릇과 함께라면 속도 보호하고 약도 편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프거나 기력이 없을 때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한 끼로 이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낙지가 질겨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낙지를 처음부터 죽에 넣고 끓이면 근섬유가 수축해 질겨집니다. 끓는 물에 1분 내외로 살짝 데쳐서 잘게 썬 뒤, 완성된 죽에 고명으로 올리는 방식이 가장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살려줍니다.
Q. 육수를 따로 내지 않아도 맛이 나나요?
A. 표고버섯 가루 한 스푼을 넣으면 별도 육수 없이도 감칠맛이 충분히 납니다. 표고버섯에 들어 있는 구아닐산이 국물 깊이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육수를 준비하기 어려울 때 유용한 대안입니다.
Q. 신김치가 없으면 일반 김치를 써도 되나요?
A. 쓸 수는 있지만 맛 차이가 납니다. 잘 익은 신김치는 볶았을 때 산미와 감칠맛이 함께 올라와 죽에 깊이를 더해줍니다. 신김치에 가깝게 익은 것일수록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Q. 낙지 비린내를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뭔가요?
A. 밀가루를 넉넉히 뿌려 표면을 바득바득 문지르면 점액질인 뮤신이 밀가루에 흡착되어 제거됩니다. 이후 흐르는 물에 깨끗이 헹궈내면 비린내가 크게 줄어듭니다. 이 단계를 건너뛰면 완성된 죽 전체에 비린 맛이 배어들 수 있습니다.
결론
환절기에 몸이 으슬으슬해지고 기운이 빠질 때, 흰죽 한 그릇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제 생각은 이번에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낙지를 밀가루로 손질하고, 김치를 파기름에 충분히 볶고, 표고버섯 가루로 감칠맛을 더해 끓인 낙지김치죽 한 그릇은 속도 데워주고 기력도 채워주는 한 끼였습니다.
특히 약을 먹어야 하는데 빈속이 걱정될 때, 이 죽처럼 속 부담 없이 든든하게 채워주는 음식이 제 경험상 가장 실용적이었습니다. 재료도 냉장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들이라 부담이 없습니다. 몸이 꺾이는 느낌이 들 때, 한 번 만들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