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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호박이 넘쳐날 때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올 여름에 단호박을 꽤 넉넉하게 키웠는데, 쪄 먹고 죽 끓이고 말려도 결국 남는 것이 호박이더라고요. 그러던 중 콩 대신 호박으로 된장과 간장을 담근다는 방법을 알게 됐는데,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호박, 그냥 쪄 먹기엔 아까운 작물
단호박을 찜기에 올려 그냥 먹어도 충분히 맛있습니다. 고구마나 감자 못지않게 속이 꽉 차서 금방 배가 부르고, 씨를 발라낸 뒤 살만 떠먹으면 달콤한 향이 입안을 채웁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단호박의 절반밖에 못 쓰는 방법입니다. 으깨서 꿀이나 우유를 넣고 끓이면 단맛이 훨씬 깊어지고, 얇게 썰어 말리면 칼로리 부담 없는 건강 간식이 됩니다. 아예 발효 재료로 쓰면 단호박이 전혀 다른 식재료로 변신합니다.
상태 좋은 단호박을 고르는 것도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제 경험상 손에 들었을 때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이 확실히 맛이 좋습니다. 껍질이 선명한 짙은 녹색을 띠고 표면이 고르게 단단한 것을 골라야 합니다. 물렁하게 움푹 꺼진 부분이 있거나 심한 흠집, 곰팡이가 핀 것은 과감하게 빼야 합니다. 반으로 가르면 진한 주황빛 과육이 드러나는데, 그 색만 봐도 맛있겠다는 확신이 옵니다. 색이 연하고 속이 허전해 보이는 단호박은 아무리 공을 들여도 결과물이 아쉽습니다.
호박을 발효 재료로 쓴다는 개념 자체가 낯선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발효(醱酵)란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새로운 풍미와 영양 성분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뜻합니다. 콩이 메주가 되고 된장이 되는 원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호박에는 당분과 수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염장을 거치면 발효 환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한국식품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호박에는 베타카로틴(β-carotene)이 풍부한데, 베타카로틴이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어 항산화 작용을 하는 성분입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발효를 거치면 이 성분의 흡수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호박 된장은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방법입니다.
염장부터 숙성까지, 헷갈리는 부분 짚어보기
호박 된장을 담글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손질입니다. 껍질을 썰고 씨와 속의 스펀지 같은 부위를 반드시 파내야 합니다. 이 부위를 그냥 두면 숙성 중에 가장 먼저 물러지면서 시큼한 군내가 생기고, 나중에 요리할 때 식감도 불쾌해집니다. 다만 씨가 아직 생기지 않은 아주 어린 호박이라면 통째로 써도 무방합니다. 저는 처음에 이 부분을 대충 넘겼다가 괜히 고생했습니다. 속을 충분히 긁어내지 않으면 숙성 과정에서 냄새가 달라집니다.
염장(鹽藏)이란 소금을 이용해 식재료의 수분을 빼내고 부패를 막는 저장 방법을 뜻합니다. 호박 된장을 담글 때 소금 양이 조금 헷갈릴 수 있는데, 간장용과 된장용이 다릅니다.
- 호박 간장을 만들 때: 호박에 소금 300g을 넣고 염장합니다. 여기서 나온 국물을 따로 끓여 식히면 호박 특유의 달큰한 감칠맛이 담긴 간장처럼 활용할 수 있습니다.
- 호박 된장을 만들 때: 소금을 200g만 넣습니다. 나중에 메주가루를 섞을 때 간이 더해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소금을 줄여야 짜지 않습니다.
- 염장 후 누르기: 비닐 등으로 호박을 눌러 위로 뜨지 않도록 합니다. 여름엔 3일, 겨울엔 그보다 조금 더 두면 수분이 충분히 빠져나옵니다.
- 골마지 처리: 일주일쯤 뒤 표면에 흰 막인 골마지(효모균 막)가 생기더라도 걷어내고 사용하면 괜찮습니다. 골마지란 소금물 표면에 효모균이 자라며 생기는 흰 막으로,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주가루(된장을 만들기 위해 콩을 발효시켜 말린 뒤 갈아낸 가루)를 섞을 때는 농도가 중요합니다. 너무 뻑뻑하면 숙성이 고르게 되지 않고, 너무 질면 형태가 잡히지 않습니다. 약간 촉촉한 느낌이 나는 정도로 맞춰야 메주가루가 수분을 흡수하면서 2~3개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된장 형태로 자리를 잡습니다. 용기에 담은 뒤에는 표면에 종이 호일을 딱 맞게 잘라 덮어주어 곰팡이 생성을 막아야 합니다. 최소 3개월의 숙성 기간을 지켜야 제대로 된 맛이 납니다.
용기 관리도 빠뜨리면 안 됩니다. 물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변질로 이어질 수 있어서 사용 전에 완전히 건조한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직접 써봤는데, 급하게 닦고 바로 사용했다가 표면이 미끄럽고 이상한 냄새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차이처럼 보여도 발효 음식에서는 결정적인 변수가 됩니다.
호박 된장, 실제로 써보니 어떨까
잘 숙성된 호박 된장은 설탕이나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았는데도 단맛이 납니다. 이건 호박 자체에 들어 있는 당분이 메주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맛입니다. 일반 된장보다 훨씬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 덕분에 쌈장으로 바로 찍어 먹어도 거부감이 없습니다. 호박 섬유질이 발효 과정에서 녹아들기 때문입니다.
호박 된장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도 있고, 과장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효능에 지나치게 기대를 걸기보다는 맛 자체로 평가하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칼륨(Potassium) 함량입니다. 칼륨이란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돕는 미네랄로, 된장의 염분이 걱정되는 분들에게는 이 부분이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식품 데이터에 따르면 호박류에는 칼륨이 100g당 300mg 이상 함유되어 있어 나트륨 과다 섭취를 어느 정도 상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된장을 담그고 남은 호박 조각들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소금기를 살짝 빼낸 뒤 새우젓이나 들깨가루를 넣으면 호박볶음이나 찌개 재료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호박볶음을 처음 만들어봤을 때 생각보다 간이 잘 배어 있어서 따로 양념을 거의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염장 과정을 거친 덕분에 호박 자체에 이미 맛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호박 된장을 적극 권하는 분들도 있고, 결국 콩 된장을 넘지 못한다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비교의 문제가 아닙니다. 호박 된장은 콩 된장의 대체재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성격의 발효 식품입니다. 깊고 진한 된장 특유의 구수함을 원한다면 콩 된장이 맞습니다. 반면 부드럽고 달큰한 감칠맛을 원한다면 호박 된장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요리들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단호박 말고 애호박이나 늙은 호박으로도 호박 된장을 담글 수 있나요?
A. 네, 애호박이나 둥근 호박, 넓은 호박 등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호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분 함량과 당도가 종류마다 다르기 때문에 숙성 후 맛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단호박으로 담갔을 때 단맛이 가장 뚜렷하게 느껴졌습니다.
Q. 골마지가 많이 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골마지는 표면을 깨끗하게 걷어내고 그 아래 호박 상태를 확인하면 됩니다. 아래쪽이 정상적인 냄새와 색이라면 계속 사용해도 괜찮습니다. 골마지가 지나치게 많거나 군내가 심하게 난다면 보관 환경이 너무 더웠거나 용기에 물기가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Q. 호박 된장 숙성 기간을 꼭 3개월 이상 지켜야 하나요?
A. 3개월은 최소 기준으로 보는 편이 맞습니다. 메주가루가 수분을 흡수하고 발효가 진행되면서 맛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데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2개월쯤 됐을 때 조금 맛을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3개월이 지난 후와 비교하면 분명히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Q. 호박에서 나온 국물은 어떻게 활용하나요?
A. 염장 과정에서 호박이 내는 국물을 따라내어 한 번 끓인 다음 식혀서 사용합니다. 호박 특유의 달큰한 감칠맛이 담겨 있어서 나물 무침이나 찌개, 볶음 요리에 조미료 대신 넣으면 풍미가 자연스럽게 살아납니다.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국물입니다.
Q. 호박 된장을 담글 때 용기는 무엇을 쓰는 게 좋나요?
A. 유리나 도자기 용기를 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용 전에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물기가 남으면 숙성 중에 변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을 한 번 소홀히 했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호박 된장이 콩 된장보다 낫다거나 더 못하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지금 손에 있는 호박을 어떻게 가장 맛있게 쓸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텃밭에서 호박이 넘칠 때, 혹은 마트에서 저렴하게 나온 단호박 한 통이 생겼을 때, 발효 식품에 도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처음엔 소금 양과 숙성 기간만 잘 지켜도 충분히 먹을 만한 결과물이 나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양 또는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SYJIUIKS2w